최면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담자분들은 다음 사항들을 이해하여야 한다. 최면의 대한
이해가 떨어지면 막연한 기대감에 그치기 쉬우며 자칫 미신적이거나 영적인 것으로만
이해되기 쉽기 때문이다.
꼭두각시 오해
Q : 최면상태에서는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가?
즉 최면에 들어가면 나 자신이 통제력을 잃고 의지가 없어져서 조종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이다.
A : “ 최면에 걸리면 최면자가 시키는 대로 한다” 고 하는 것은 오해이다. 피 최면자의 기분에 거슬리는 불리한 암시를 줄
때는 거부되기 마련이고, 피 최면자는 자기의 의지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직 최면사의 협력을 받아 목표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스스로 찾아 가는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최면요법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피최면자의
문제해결을 향한 의지와 동기가 명확할수록 좋다. 그리고 최면은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효과를 거두는 것임을 말하고 싶다.
혹시 텔레비전에서 최면상태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면, 먼저 그 사람이 자발적으로 최면상태를 경험하겠다는 동의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오해가 풀릴것이다.
비밀노출 오해
Q : 최면상태에서 비밀을 말하거나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가? 즉 마음속의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이다.
A : 최면을 받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술술 말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면상태는 자신이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치료와 관계된 과거와 현재의 요인들을 두 사람이
서로 협력하여 알아보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와 관계된 일과 그 기억들이 나오게 되면 내담자는 의식적으로 피할 수 있고
최면사도 진행여부를 물어보기 때문에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보호본능은 어떤 상황에서든 반사적으로 작동하는데,
최면에서도 마찬가지로 피최면자에게 불리한 암시를 주면 저항하는 것이다. 또한 깨어있을 때와 같이 깊은 비밀은 얼마든지
말하지 않을 수 있고, 진실하지 않은 경우 최면에 걸린 동안에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최면상담사는 피최면자가
바라지 않는 행위, 즉 도덕이나 윤리에 반한 행위를 반복해서 만들어서는 안된다. 최면은 선용할 때에 한하여 그 위력과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피최면자가 이미 지니고 있는 잠재능력을 일깨워 줄 뿐이다. 피최면자는 깨어있거나 최면상태
거나 간에 자기의 습관화된 심리에 따라 도덕적인 면으로나 비도덕적인 면으로 기울어져 있다. 범죄적인 암시는 오직 범죄적
심리를 가진 사람에게만 받아들여지게 될 수 있다. 최면은 심리학자들이 교육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며, 모든 최면은 자기암시
이다. 즉, 암시에 대한 동의가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못 깨어나면 오해
Q : 최면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A : 그런 일은 결코 없다. 얕은 최면상태에서는 피최면자가 깨어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깨어날 수 있고, 또 아무리 깊은 최면의 경우
라도 각성암시에 의해 반드시 깨어날 수 있다. 만약 깨우지 않고 두면 최면에서 수면으로 바뀌어 실컷 자다가 깨어나게 되어
있다. 깨어나기 싫어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면상태로 들어가 보니 대단히 기분이 좋아 그 상태를 계속 있고 싶어서 깨어나는 암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둘째, 최면사가 부도덕한 암시를 주어 피최면자가 최면사의 암시에 반항하고 있는 경우.
셋째, 피최면자가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경우.
이런 경우에 최면사는 피최면자에게 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인가를 질문하여, 원인이 명확해지고 이해되었을 때 최면을 종결시
키는 추가 암시를 주면 쉽사리 깨어날 수 있다.
의식을 잃거나 기억을 하지 못할까 염려된다
A : 의식을 잃는 것이 아니고 명료한 의식상태로 깨어있다. 아주 깊은 최면상태를 경험하는 소수에게서 일정부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면 중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다 기억하고, 정신은 멀쩡하다. 최면상태의
깊이는 중간의 적당한 깊이면 충분히 작업이 가능하다.
정신력이 약한 사람들이 최면에 잘 걸린다
A : 먼저 한 가지 용어를 알아보도록 하자. 최면에의 감수성여부는 최면감수성(hypnotizability) 이라고 하여 얼마나 최면이 잘
걸릴 수 있느냐 하는 개인의 특성을 의미하는 용어가 있다. 간단한 테스트 중 하나는 안구를 굴려서(천장을 쳐다보는 식으로)
흰자위가 얼마나 보이는가를 보는데, 사람들 간에 차이가 있다. 흰자위가 많이 보이는 사람이 최면감수성이 높다. 최면에 잘
걸린다는 말인데 최면은 누구나 걸릴 수 있고 경험이 가능하다. 소아나 청소년들이 아주 잘 걸릴 수 있는데 그것은 순수함과
집중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노인들까지도 최면에 걸릴 수 있으며 처음 한 번으로 안되면 두 번,세 번 시도하면 되게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내담자가 최면에관심이 많고 최면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면자의 의지,자신감,내담자를 배려하고 문제를 해결 해 주려고 하는 따뜻한 마음 등 최면자의 태도가 중요하다. '때문에 정신
력이 약한 사람들이 최면에 잘 걸린다' 는 것은 틀린 말이다. 오히려 집중을 안하므로 최면에 잘 걸리지 못하게 된다.
최면은 위험하다
A : 최면유도시 이완감을 느끼고 최면에서 쉽게 깨어날 수 있기 때문에 최면자체는 위험하지 않다.
심한 우울증환자의 경우 최면에 너무 기대가 커서 최면에서 뜻한 바를 얻지 못할 경우 악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최면자체가 치료다
A : 최면상태에 도달했다고 해서 심리가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최면상태에서 피험자는 편안하고 이완감을 느끼므로 좀 더 자연스
럽게 자신에 대해 드러내놓게 되는데 이 때 나타나는 현상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